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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학술] ‘고전, 세계를 묻다’
[학술] ‘고전, 세계를 묻다’
교양교육원2018-11-12

원광대 세계고전강좌, 100회가 되다.

2008년 9월 10일 열린 첫 세계고전 강좌에서 나는 니체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했다. 대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표현력, 글쓰기 능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책읽기였기에, 이를 위해 글쓰기센터(현, 의사소통센터)에 세계고전강좌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후 문학, 역사, 철학,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서고금의 고전 99권이 소개되었고, 세계고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때로는 시대와 사회, 역사와 문명, 인간과 자연, 예술과 진리 등의 물음을 묻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사이 벌써 10여년의 성상(星霜)이 지나가고 이제 100회를 기념하는 세계고전강좌를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10년 동안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동서고금의 세계고전을 이렇게 깊이 있게 다룬 적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 세계고전강좌 100회를 기념하는 강연은 한국의 대학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 그리고 원광대의 인문정신의 뿌리가 거목처럼 내리게 되는 자랑스러운 사건이기도 하다.

21세기, 왜 세계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학혁신을 이루어 낸 유명한 예로 우리는 로버트 허친스(Robert M. Hutchins) 시카고대학교 총장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인문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는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시카고 플랜’을 세워 이름 없던 시카고대학교를 91명의 노벨 수상자가 배출되는 세계 명문대학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미국의 160개 대학에서 인문고전 100권 독서프로그램을 전개하며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시카고 플랜의 연장이다. 글로벌 명문대학의 첫 지점은 인문소양교육에 있으며, 그 핵심은 세계고전을 읽고 시대와 사회, 인간과 세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성찰적 공부에 있다. “나를 만든 것은 어릴 적 동네의 공공도서관에서 읽은 고전들이다”는 빌 게이츠의 말처럼, 고전은 인문학 교육의 핵심이자 21세기를 준비하는 후마니타스 역량교육의 중심이다.

고전, 세계를 묻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전에 대한 물음과 연관해 고전이 세계를 묻는 방식이나 그 역할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고전은 인간을 묻는다.
고전은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서양 고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와 함께 서양 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그리스신화』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딧세이아』 등이다. 이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 즉 욕망, 쾌락, 갈등, 반항, 모험, 죽음 등 유한한 인간의 운명과 한계를 다루고 있다.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비롯해 수많은 철학텍스트나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 연극, 미술 등의 예술작품이 여기에 정신적 빚을 지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서사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선원의 배를 난파시키는 사이렌, 눈 하나를 가진 거인 퀴클롭스, 영생과 쾌락을 제공하는 칼립소 등 수많은 신화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도 감각적 쾌락으로 유혹하는 요정 사이렌이며, 자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찾는 현대인의 모순적 모습을 퀴클롭스의 절규 ‘노바디'(nobody), 즉 “나는 그 누구도 아니다”에서 찾는 호르크 아도르노/아도르노의 서양 현대문명 비판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단테의 『신곡』은 인간의 욕망, 죄악, 운명, 영혼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단테가 잠에서 깨어나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지옥」편은 시작한다. “여기 들어오는 자는 희망을 버릴지어다”는 문구가 있는 지옥문을 들어가자 그는 사자와 시라소니, 암이리를 만나는데, 이는 각각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교만/권력, 육욕/음란, 탐욕/돈 등을 뜻한다. 이 책은 아무 목적 없이 방종하게 살고, 자신의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때 생겨나는 삶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최고의 지성인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 지식의 한계를 느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기는 조건으로 젊음을 사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며 아름다운 소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지만, 마침내 그녀의 삶을 비극으로 몰고 가고 자신도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구원받는다. “인간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한 그는 길을 잘못 딛게 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는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은 인간이란 무언가를 위해 움직여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하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인간의 깊은 본성과 영혼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 이 책들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며 삶의 파탄에 이르게 되는지, 나를 찾아가는 길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고전은 나를 묻는다.

고전은 나 자신을 성찰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동양 고전 『논어』와 『도덕경』 혹은 『장자』 등은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삶을 살고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인간으로서 지킬 덕목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를 문학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랑이 단순히 이성(異性)이나 특정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자신의 존재를 여는 ‘존재 개방성’이며, 사랑에는 ‘앎’, ‘배려’, ‘존중’, ‘책임감’ 등 인간적 덕목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의미 있는 삶의 가능성을 죽음과 연관해 묻는 고전으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있다. 이 소설은 죽음과 죽어감을 통해 진정한 삶의 여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고전은 일상적 세속적 삶의 가치를 넘어서 진정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거나 참된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길안내를 한다.

셋째, 고전은 예술을 묻는다.

고전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상상력과 창조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려준다. 현대 무용의 문을 열어놓은 이사도라 던컨은 평생 침대 옆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두며 읽었다. 발레와 코르셋, 무대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을 긍정하고 그리스적 세계와 자연 속에서 춤을 춘 던컨의 세계는 니체 사상의 무용적 변주였다. 니체의 책에서 현대무용이 탄생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예술 혹은 미학에 대한 책으로 로젠크란츠와 벤야민의 저서가 있다. 전자는 미의 부정성인 추의 문제를 통해 예술의 현대적 문을 연 미학 책이고, 후자는 기술발전과 더불어 예술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인 사회비판적 예술론이다. 로젠크란츠의 저서 『추의 미학』은 19세기 중반의 도시화, 빈곤화, 사회화를 통해 시대적 ‘추한’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추의 미학적 가능성을 문화사적으로 열어놓게 되는데, 이는 베이컨, 허스트 등 현대예술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매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지각구조가 변화하고, 예술과 대상의 상호작용에서 규정되던 ‘아우라’가 붕괴되며, 예술작품에 대한 접근의 민주화와 동시에 정신분산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 저서들은 시대와 사회, 진리와 거짓, 미와 추 등 현대정신을 철학으로 묻고 있다.

넷째, 고전은 역사와 사회를 묻는다.

고전은 시대, 사회, 역사를 통찰하는 힘을 제공한다. 고전은 인간의 삶의 흔적과 가치실현의 노력, 즉 인류 정신의 DNA를 담고 있다. 동양에서 역사를 성찰하는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가 사마천의 『사기열전』이다. 이 책은 백이·숙제, 노자, 장자, 한비자, 여불위, 이사, 화식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공과(功過)와 정의(正義) 문제를 제기하며, 오늘날까지 이천 년 시공을 넘어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읽는 역사적 이정표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 서양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묻는 저서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동양 혹은 타자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하나로서 서구적 시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사이드(R.W. Said)의 『오리엔탈리즘』과 파농(F. Fanon)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있다. 후쿠야마는 서양의 자연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현대는 육체적 물질적 안락에 집착하며 작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최후의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이드나 파농도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고 위압하기 위해 만든 서양적 언설을 동양이 내면화하고 스스로 규율화하는 과정을 폭로함으로써 한 문화의 자기 정체성의 물음을 제기한다. 오리엔탈리즘은 학문의 영역뿐만 아니라 거리에 넘쳐나는 외국어 상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서양스타일 혹은 서양문화를 얼마나 내면화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성찰적 언어로 읽혀질 수 있다.

고전과 현재를 즐기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은 주입식 교육에 짓눌린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입시, 출세, 죽은 지식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자기의 걸음으로 자기의 인생을 살라는 말이다. 오늘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며 품격 있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때로 미술관이나 연주회, 연극이나 공연을 찾고, 책읽기를 통해 사유의 움직임이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멋진 인간이 되고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아무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문제들을 깊게 성찰할 줄 알아야 하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악덕에 저항할 수 있는 실천능력도 있어야 한다. 고전은 세계를 묻고 우리로 하여금 ‘세계인'(Homo mundanus)이 되도록 길안내해 주는 이정표이자 정신의 동반자이다.

김정현 교수(철학과)

출처 : 원대신문(http://www.wknews.net)

 

원본 기사링크: https://www.wk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3981